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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의 마지막 수호신 강유의 영혼이 남아있는 곳 ‘검문관’ 재미있는 중국


촉의 마지막 수호신 강유의 영혼이 남아있는 곳 검문관




          검문관(剑门关)

<촉나라로 진입하는 관문이자 요충지>


  제갈량이 북벌을 단행할 때 군대를 끌고 통과했던 곳, 남북 통행의 관문이자 산세가 험하여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다는 최고의 요충지, 오늘의 주인공 검문관(剑门关)이다

  이곳은 제갈량이 유비의 아들 유선에게 출사표를 바치고 위()나라 정벌에 나설 때 지나던 관문이다. 또한 위나라 장수 등애가 촉한을 정벌하기 위해 청두(成都)로 진공하는 와중에 마지막으로 무너뜨린 관문이기도 하다

  이런 병풍 같은 절벽의 중간에 계곡처럼 잘라진 부분이 하나 있는데 칼을 꼽아 세워 통로를 만들었다고 표현하여 검문(剑门)이라 불렀고 이곳에 성루를 쌓아 전략적 요충지로 삼아 검문관(剑门关)이라고 불리웠다. 그리고 이러한 요충지에 위치해 있던 촉나라는 위나라와 오나라의 견제에서 벗어나 조금씩 세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에 촉이 기울고 종회가 이끄는 10만의 위나라 군사가 촉을 정벌하러 왔을 때, 강유가 2만 군사를 데리고 이곳을 결사적으로 방어해서 종회의 군대를 저지했던 곳이다

  그야말로 한 사람이 만 명을 막아낸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그리하여 이백의 시인 《촉도난》에서 위의 일화를 빗대어 한 사람이 막아서면 만 명도 뚫지 못한다(一夫当关万夫莫)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강유의 필사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위나라 등예의 결사대가 검문관과는 멀리 떨어진 곳인 음평이라는 곳을 뚫고 성도로 진격하여 유선의 항복을 받아내자 강유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촉은 멸망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곳 사람들은 강유를 이 지역의 수호신이라고 칭한다.


<굽이굽이 절벽으로 이어져 있는 험난한 요새>


 

촉도난 (蜀道難)

 

                                이백(李白)

 

劍閣嶸而崔嵬
검각의 봉우리들은 가파르고 우뚝솟아

 

一夫當關萬夫莫開
한 사람이 막아서면 만 명도 뚫지 못하네

 

所守或匪親化爲狼與豺
지키는 이 친족 아니면 언제 이리 승냥이 될지 몰라

 

朝避猛虎夕避長蛇
아침에 모진 호랑이 피하고 저녁에 긴 뱀을 피해도

 

磨牙血殺人如麻
이를 갈고 피를 빨아 마귀처럼 사람을 죽이네.

 

錦城雖云樂不如早還家
금성이 비록 좋다고 하나 집으로 돌아감만 못하고

 

蜀道之難難於上靑天
촉으로 가기 어려워 푸른 하늘 오르기보다 어려워라.

 

側身西望常咨嗟
몸 기울여 서쪽 바라보며 길게 탄식하노라.

 

(위 시는 시선(詩仙) 이백(李白)이 지은촉도난(蜀道難)’의 일부)

 

 

검문관 일화에 얽힌 음식 – ‘강유두부

 

  촉나라 군대가 검문관을 지나 북벌에 나선 횟수는 총 16차례인데 이 가운데 제갈량이 9차례의 북벌을 단행했으며 나머지 7차례는 강유가 지휘했다. 검문관은 삼국시대 촉나라와 위나라의 주요 전장으로 군량미가 늘 부족하여 강유는 항상 고민에 빠져 있었고 현지 주민들이 황두(黄豆)로 두부를 만들어 군사들에게 먹이고 콩비지는 전마(战马)로 쓰이는 말에게 먹이도록 했다. 그리하여 군사들이 기력을 되찾아 위나라 군대를 크게 이겼다고 한다.

<강유두부 - 강유가 위나라 군대를 수비하는 모습을 형상화 했다>


<검문관 두부연회>


<촉의 마지막 수호신 강유(뒤쪽 중앙)와 부하 장수들을 형상화한 동상>


 

  중국의 원자바오(温家宝) 국무원 총리는 2000년대 초반 쓰촨(四川)성을 둘러보던 중 중원 세력이 촉으로 진입해 들어왔던 촉도(蜀道)를 복원하라는 지령을 내렸다이는 위대한 역사에 대한 중국인들의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작업의 일환인 동시에 촉도 복원을 통해 중국 서부 지역을 관광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시키려는 전략적 조치였다

  중국 정부는 제조업에 치중돼 있던 산업구조를 서비스산업 중심으로 전환시키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내륙에 위치한 쓰촨성을 문화 서비스산업의 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해 그 동안 방치돼 왔던 삼국지 역사 유적에 대한 개발에 나선 것이다

  

  덩샤오핑(小平)의 개혁개방에 따라 중국은 오랫동안 전통 제조업과 수출산업위주의 발전전략을 추진해 왔고 투자는 자연히 외자유치와 수출이 용이한 동부 연안 지역에 집중됐다

  쓰촨성을 비롯한 중국 서부지역은 외국계 기업들이 진출을 꺼리면서 경제개발의 수혜를 누릴 수 없었다

  그러나 정책이 내수와 문화 서비스산업 활성화를 꾀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면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유적을 다수 보유한 서부지역이 주목 받기 시작했다. 역사 유적이야말로 서비스 산업 발전을 위한 필수 조건 중 하나였던 것이다.

<현재 검문관 주변 관광지>



<저 좁은 입구를 통해 북벌을 단행했던 제갈량,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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