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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천재’ 방통이 묻혀있는 곳 - 낙봉파(落凤坡)를 가다 재미있는 중국

비운의 천재방통이 묻혀있는 곳 - 낙봉파(凤坡)를 가다

<백마관 관광지 여행 안내도>

 

방통(庞统), 자는 사원(士元)이다. 촉의 책사로 유명한 인물이며 제갈량을 와룡(卧龙)에 비유하였고 방통은 봉추(凤雏: 봉황의 새끼)라고 하였다. 소박한 외모에 우둔해 보이기도 했으며 그의 자질을 알아보는 이가 없다가 사마휘가 방통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오나라 주유 휘하에서 공조로 일하였다. 하지만 주유가 요절하자 촉한 유비의 신하가 되었다. 하지만 유비는 그의 재능보다 외모를 보고 판단하여 방통을 지방인 뇌양현의 현령으로 보내버렸다. 어느날 장비가 뇌양현을 갔다가 방통의 재능을 알아보고 유비에게 천거하여 군사 중랑장(军事郎将)이 되었다. 방통은 뛰어난 책략으로 유비가 익주(益州) 땅을 얻는 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하였다. 낙성으로 진격하는 도중 매복병에게 화살을 맞고 낙봉파(凤坡)에서 36살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방통사 내부에 있는 비석 중 하나>

 

방통은 사물의 본질을 판별하고, 임기응변으로 현실적인 수단을 강구하는 것이 뛰어나고 인물 평가, 모략에 능력을 발휘했다. 일찍 죽었기 때문에 그만큼 사적이 많지는 않지만, 남겨진 일화에서는 방통의 지성과 인격을 엿볼 수 있다. 「방통전(庞统传)」에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촉 침공 때, 승리에 들뜬 유비에게 「타인의 나라를 침략하고 있는데, 그것을 기뻐하신다면 그건 인자한 싸움이 아닙니다」라고 해, 원래 촉을 취하도록 권한 것은 방통인 것에도 불구하고, 통렬하게 유비를 비판했다. 유비는 화내며 방통에게 퇴석을 명했지만, 곧바로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 돌아오도록 말했다. 방통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같은 자리로 돌아왔지만, 유비가 오히려 황송해 해 「조금전의 논의로는 나와 너의 어느 쪽이 잘못되었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군신 모두 잘못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해서 만담이 되었다고 한다.

 <방통사로 향하는 입구 백마관’ - 사천(四川)성 덕양()시 에서 15km 떨어져 있으며 서안(西安)에서 성도(成都)로 들어가는 최후의 요충지이다 - 성급 문물 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다>

<금우고도(金牛古道)>

금우고도는 북으로는 장안(서안)까지 910km, 남으로는 익주(성도)까지 90km이른다.   당시 촉과 장안을 잇는 길이었으며 주요 통신망이었던 역참이 오가는 길이기도 하다. 이런 길을 역도라고도 하는데 그래서 이 길을 금우고역도(金牛古驿道)라고 부른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촉은 주변이 온통 험준한 산맥으로 둘러싸인 거대 분지로 예로부터 중원 세력은 비옥한 촉을 손에 넣기 위해 공을 들였지만 들어오는 길을 찾지 못해 번번히 실패했다. 촉을 최초로 점령한 사람은 진시황의 고조부 뻘인 진 혜문왕(惠文王)이다. 그는 촉을 얻기 위해 한가지 꾀를 냈다. 돌을 깎아 다섯 마리의 소를 만든 후 황금 똥을 싼다고 소문을 낸 것이다. 탐욕스러웠던 촉왕은 이 소를 갖기 위해 스스로 중원으로 나오는 길을 냈다. 진 혜문왕은 이 길로 들어와 촉을 멸하고 천하통일의 기틀을 다졌다. 이 때부터 촉도를 금우도(金牛道)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무기둥과 쇠사슬을 연결하여 만들어진 긴 울타리 안에 보호되고 있는 좁은 폭의 고역도가 저 멀리 서안에서부터 성도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방통사묘로 들어가는 입구>


<한정후방사원의묘(汉靖侯庞士元之墓)라고 적혀 있다, 사원은 방통의 자(字)>

<이곳이 방통의 실제 묘로 전해진다 – '낙봉파(凤坡)라고 적혀있다>

봉황새가 떨어진다는 뜻의 지명인 낙봉파에서 죽음을 맞이한 방통. 교묘하게도 방통의 호()봉추(凤雏)’어린 봉황이라는 의미로 방통의 죽음과 교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유비가 익주를 취하러 진군하는 중 방통이 말에서 떨어지는 작은 사고가 일어난다. 그러자 유비는 자신 타고 있던 백마를 방통에게 내어준다. 그렇게 진군해 가던 중 낙봉파라는 곳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적의 기습을 받게 된다. 적군은 백마를 탄 사람이 유비라고 생각하고 화살을 소나기처럼 쏘아댔고 결국 이 낙봉파에서 방통은 유비를 대신해 죽음을 맞이한다.

<마치 그때의 죄를 지금까지도 말에게 추궁하기라도 하듯 말의 상을 꼼짝 못하게 묶어 놓았다>

 

지명이 이미 그의 죽음을 예고했다는 이곳 낙봉파. 형주의 명사 사마휘가 직접 가르쳤고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추천한 천재, 그러나 외모가 너무 추해서 손권도 유비도 그의 비범한 재능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비운의 천재 방통이 잠들어 있다. 만일 방통이 죽지 않고 제갈량과 함께 계속해서 유비를 보좌했더라면 유비의 촉한이 사마휘의 말처럼 삼국을 통일하고 천하를 얻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덧글

  • tibul 2013/11/03 20:27 # 삭제 답글

    수십년전 삼국지를 읽고 피지못하고 요절했던 드러나지않은 영웅,봉황의새끼 봉추를 알게 되었지.
    유비를 대신해 자신의 능력을 펴지못하고 요절했고 아직도 중국인이 추모하는걸보니 대단했던 진짜 봉추였던것 같아 아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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